동대문소개

유래및 연혁

유래

휘경동의 동이름은 조선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묘소 휘경원(徽慶園)이 있는 데에서 유래된다.
수빈 박씨는 판돈령부사 박준원(朴準源)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자질과 언행이 특출하여 정조 11년 왕실의 후사를 잇기 위한 후궁 간택에 수위로 뽑혔다.
같은 해, 2월에 입궁하여 가순당(嘉順堂)의 궁호를 받았다.
이어서 정조 14년 6월에는 원자(후일의 순조)가 경복궁 집복헌에서 탄생하니 조정이 기뻐하였다.
정조 24년에는 원자가 세자에 책봉되고, 그 해 6월 왕이 승하하니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이 때 순조의 나이 겨우 11세이었다.
때문에 효의왕후가 수렴청정 하였지만 생모인 수빈의 부조의 공이 또한 컸던 것이다.
수빈이 세상을 떠난 것은 1822년(순조 22년)이었다.
왕은 양주군 배봉산 아래 휘경동 산 7∼8번지를 묘역으로 정하고, 1823년(순조 23년) 2월 27일을 택하여 장례식을 거행하였으며 묘소 이름을 '휘경(徽慶)'으로 하였던 것이다.
그 뒤로 왕은 세자를 데리고 자주 이곳 휘경원에 거동하니, 당시 한적한 마을이던 휘경원 일대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이름도 '휘경원' 또는 '휘경리'로 불리었다.
땅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휘경동은, 처음에는 휘경원으로 불리다가 차츰 '휘경리', '휘경동' 등으로 고쳐졌다.

연혁

조선초
조선초

휘경동은 조선초부터 한성부 동부 인창방에 속하였으며

1894
갑오개혁

동서 인창동 동소문 외계 휘경원으로

1936
1936.04.01

경성부 확장에 따라 경기도에서 경성부로 편입되면서 휘경정으로 칭하고

1943
1943.06.10

구제 실시로 동대문구에 속하게 되었으며,

광복후
광복후

일제식 동명을 우리 고유의 명칭으로 고칠 때 휘경원 현재 명칭인이 휘경동으로 되었음

1982
1982.07.01

인구의 증가로 면목동의 일부를 포함시켜 휘경2동이 분동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