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마당

사라져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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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사람들
작성자 : 김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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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가는 사람들 

                  

                        

                                            

                                  

   얼마 전 30년도 더 된 재래시장 자리에 묵은 먼지를 털고 깔끔한 마트가 들어섰다. 정문에선 도우미가 춤을 추고, 스피커에선 음악이 온 동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파트들이 대거 들어서자 상인들이 하나 둘 이곳을 떠나면서 재래시장은 동굴처럼 어둠에 갇히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가끔 들려 보면 노르스름한 백열등 아래 노인들만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이런데서 무슨 장사가 될까 싶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인지 얼른 걷어치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재개발 뉴타운지역’으로 확정 되면서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시장에는  대형 마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다. 생각보다 빨리 공사가 진행되는 듯싶더니 어느 새 입구에 임시 사무실이 들어서 있었다. 날 벼락 같은 건물주의 기세에 망연자실한 상인들이 서성대고 몇 몇 패기가 있는 사람들의 항거에도 불구하고 뼈만 앙상한 노인들은 묵묵히 보따리를 쌌다. 그들의 표정이 가슴속을 점이었다. 단골을 확보한 ‘예쁜이 아줌마’는 마트 입구에서 그대로 야채를 팔 듯 했고, 옷가게를 했던 할머니는 마트 뒷문에서 일군들의 편의를  봐 주며 장사를 계속할 듯싶었다.

  비싸지 않게 이것저것 푸짐하게 살 수 있는 재래시장을 난 좋아했다. 인근에 마트를 두고도 가끔 예전의 재래시장을 즐겨 찾았다. 그것도 도매업을 주로 하는 시장보다는 동네에선 꽤 크다는 소매 시장을 자주 갔다.

  재래시장은 입구란 게 딱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길로 가도 다 통할 수 있었다.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택하면 된다. 가다 보면 짐 실은 리어카가 좁은 길목을 파고들고 아이들도 잠시 엄마들의 손을 놓은 채 길을 비켜 주곤 했다. 상인들의 외치는 소리, 아이들의 사달라는 소리, 우연히 만난 아줌마들의 반가워하는 소리, 더러는 깎아달라며 흥정하는 소리들이 구수하게 엉키곤 했다.

  목청껏 외치고 함박웃음이 터지는 재래시장은 축제처럼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았다. 아이들은 색소든 주스도 아랑곳 하지 않으며 좋아했고, 길가에 즐비한 간식거리에 환호성을 올리곤 했다. 천 한 가닥에 몸을 가리고 옷을 입어보느라 박장대소하는 연세 지긋한 분도 있었다. 그것이 내 어머니 모습 같아서 물건을 사다말고 저절로 미소 지으며 흐뭇해지곤 했다.

  재래시장에서는 인정어린 사람들의 향기가 난다. 꼭꼭 숨겨 둔 마음을 햇빛에 내 말리듯 환해지는 가하면 소란스럽게 피어오른 인심을 맛보는 일이 되어 즐거워진다.

  우리 동네에도 재래시장이 사라지고 드디어 마트가 문을 열었다. 천정엔 오색 리본이 나풀거리고, 매장 사이로 세련된 멘트가 울려 퍼지는 분위기 속에서 주부들이 장을 보게 되었다. 예전과 사뭇 다른 정경이다. 밝고 화려한 매장사이로 빠른 템포의 음악이 어우러져 무언가를 사야할 심정이 꿈틀거렸다.

  눈부신 조명 아래 환영처럼 어릴 적 생선장사 할머니가 문득 떠올랐다. 환갑이 훨씬 넘었음직한 할머니가 수줍게 미소 지으며 이곳 생선은 특히 물이 좋다 하셨다. “단골들은 그 맛을 다 알지.” 하며 겸연쩍어 하던 모습. 굵게 패인 주름은 손님을 반겼던 미소가 그대로 자리를 잡은 듯. 그 옛날 막내 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장을 보러 갔던 어머니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 꼬마를 기억할까.

  CCTV 감시카메라가 기둥마다 표시되어 있는 매장을 지나 무기농 야채를 뒤적이다 작은 새끼 달팽이를 발견했다. “엄마, 마트에서 금붕어 팔어? 어항도 사와야 해.” 막내딸의 얼굴이 떠올라 금붕어 대신 달팽이를 비닐봉지에 담아 부지런히 나왔다. 공연히 발걸음이 무거웠다. 재래시장을 떠나던 그 사람들처럼.

 

  * 주소: 동대문구 이문3동 255-20

  * 전화번호: 02) 959-7614   010) 7270-7612

  *  김 애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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