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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로 시작된 사랑(1월테마-새해맞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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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로 시작된 사랑
90년 마지막 날, 대학 1학년을 마친 나는 새해 첫 태양을 맞고자 친구들과 정동진으로 향했다. 청량리 역 광장에는 해양대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검은색 제복의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있었다.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되자 광장에서 본 그 학생들이 대합실로 들어섰다. 우리는 정동진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야간열차고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어서인지 승객들은 잠을 자거나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내 마음도 새해 첫 태양을 맞으며 한 해의 새로운 계획을 야심차게 추진해 나가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남자들의 소란으로 명상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역에서 본 그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그 중 한 학생이 "우리 신경 쓰지 마시고 잠이나 주무시지!"라고 빈정거렸다. 난 그와 한참 실랑이를 벌였고 "주변 사람들에게 더 피해를 준다"는 내 친구의 만류로 자리에 돌아와 앉았으나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덧 기차는 정동진에 도착했다. 날씨는 쾌청했다. 간밤 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새해 첫 해가 서서히 목을 내밀자 우리들은 모두 얼싸안고 비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조용하던 바닷가는 도깨비 시장이 됐다. 어젯밤 그들이었다. 난 눈살을 찌푸렸다. 한 해를 시작하고 어느덧 5월이 됐다. 그리고 교내 산악반에 몸담고 있던 나는 봄을 맞아 ‘지역대학 연합 산악동아리’에서 주최한 지리산 등반에 참가했다. 아니 이럴 수가! 광주 역 광장에 모인 50여명의 등반대원 중에 지난 정동진 행 열차에서 나와 다투던 그 학생이 있었다. 열차에서 그는 나를 찾아와 캔 커피를 건네며 "지난 겨울 일은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주 다소곳한 태도였다. 나와 동갑인 그는 산행 내내 함께 했고 그 후로도 자주 만났다. 졸업 후 그 친구는 항해사로 오대양을 누비는 바다 사나이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2000년에 결혼, 지금은 다섯 살 된 딸을 두고 있다. 그이가 배 타던 5년을 제외하곤 한 해의 마지막 날 우리는 늘 정동진에 갔다. 결혼 후에는 딸과 함께 정동진에 간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의 새해 맞이는 늘 정동진에서 시작될 것이다.
김혜정 동대문구 장안1동 373-7번지 가야써니빌 아파트 4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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