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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집결지(속칭 청량리 588)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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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집결지(속칭 청량리 588) 역사속으로....
작성자 : 김재석 작성일 :
전화번호 02-2217-4356

시대의 풍경화가 사라진다.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인 속칭 ‘청량리 588’(전농동 588번지) 일대의 철거작업이 시작됐다.서울 동대문구는 2일 “청량리균형발전촉진지구 개발계획에 따라 전농동 588번지 지역의 일부 건물을 철거하고 곧 도로개설 공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시는 도로부지에 포함된 한국철도공사 땅도 2005년말 48억원에 사들였다. 도로 확장은 이달말 착공하는 청량리 민자역사와의 연계 교통망을 정비하기 위한 것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2006년 5월중 보상 공고를 낸 뒤 당해 6월말 공사를 발주할 계획이었다. 금년 6월까지 보상 절차를 마무리짓고 공사에 들어가면 12월에는 끝날 것으로 예상했었다. 당시 보상 비용은 총 132억원이 책정됐다.

청량리 588은 미아리 텍사스촌과 천호동 사창가와 함께 서울의 3대 집창촌이었다. 이미 천호동은 사라지고 미아리도 그 위세가 저물어가는 낙조와 같아서 유명무실하다. 청량리 588이 사라지면 서울에서 대규모 집창촌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진배없다.

청량리 588이 없어진다니 마음 한구석에 시원 섭섭한 마음이 동시에 스며든다. 글쓴이가 그곳을 자주 왕래하는 단골 고객은 아니지만, 이 집창촌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한 모습이었고 시대의 그늘과 공존해온 곳이라 우리 시대의 풍경화 한편이 거두어지는 것이라 그 변화와 흐름이 세월의 무상함을 동시에 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마음 한켠을 상념으로 채우게 만든다. 무론 그 풍경화가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는 딱히 규정할 수 없다.

지금도 용산역전에는 곳곳에 어느 정도 규모있는 사창가와 성매매업소가 남아있지만, 이 청량리 588은 미아리 텍사스촌과 더불어 우리나라 성매매의 대표명사격이었던 것이다. 부정적인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역시 우리 시대의 한 풍경이었고 그속에 얽히고 설킨 사연들이야 어찌 사람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냐.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집창촌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오랜 역사가 아니라 6·25를 전후한 과정에서 주한외국군을 상대로 하던 일부의 경우에서 오늘날의 거대한 시장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매춘이 없었던 적은 없었으나 당대의 매춘의 역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상당한 연관을 가지는 것이다.

한때는 의정부나 동두천등에서 외국군을 대상으로 이런 매매춘을 하던 여성들을 외화벌이꾼이라고 국가차원에서 칭송을하고 보호한 적도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무슨 기생충보듯 그들에 대한 온갖 단속과 범죄로의 규정등이 상존했던 아이러니가 바로 집창촌의 모습이다.

실제로 그곳을 가본것은 딱 한번인데 그것은 여자와의 섹스를 즐기기위한 것이 아니라 용두동에 사는 친우를 만나러가는 길목에 우연하게 지나친 것인데 그 야릇하고 교태로운 풍경이 지금도 생생한 것이 얼굴이 뻘게지는 것이다.

시선을 흐리게 만드는 분홍색 조명아래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온갖 종류의 야시시한 옷을 입고 “오빠~놀다가~ 잘해줄께~~^^”라는 아가씨들의 유혹하는 목소리에 뻔뻔하게도 나는 사방을 여유롭게 둘러보며 그 길을 지나갔던 것이다.

유유히 그길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심경에는 남자들이 자주찾고 이용하는 그길을 지나면서 고개숙이고 도망가듯 지나가는 것이 혹시 속좁은 남자로 보일까봐 혼자 생각에 자못 건방을 떨었던 것이고 나도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일부러의 과시였던 것으로 기억되니 한심하기 그지없는 한때의 치기가 넘치던 어린 날의 한 순간이었다.

지금이야 온갖 종류의 매체를 통해서 적라나하고 야시시한 588이상의 그런 것들을 들여다보는 세상이지만 당대의 588이 위명을 떨칠때는 선데이서울이라는 잡지가 청춘의 마음을 불사르고, 세운상가등에서 볼 수있는 외국의 플레이보이지나 펜터하우스나 야릇한 도색만화쯤이 기껏 음란물의 첨단을 달리던 시대였다.

무수한 젊은 여인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한때는 인신매매의 온상이었으며, 성매매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이후로는 썰렁한 뒷골목이 되어버렸지만 588이란 이름의 그곳은 나쁘던 좋던 우리시대의 한 구석을 장식했던 공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군입대를 하는 젊은이들이 이른바 총각딱지를 뗀다고 찾아가던 곳이고, 술취한 청년이 어설픈 감동에 사로잡혀 순정을 불태우기도 했을 것이고, 취객들의 인사불성이 발걸음을 자연스레 옮기던 또다른 공간으로서의 2차장소였던 588의 퇴장은 분명히 바람직 하면서도 한쪼가리의 아련한 추억(?)이 도려져 나가는 또다른 문화의 퇴장이라는 점에서 씁쓸하면서 시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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