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의 용두리 찬물내기 물장사

행복을 여는 동대문구

봉이 김선달의 용두리 찬물내기 물장사

목록

평양에서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은 금강산으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유람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동강물을 팔아 챙긴 돈 4000냥 중에 일부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기부하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노자 돈으로 두둑하게 챙겼으니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금강산인지라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난생 처음 와 본 금강산은 그야말로 천하의 절경이었다.

에 같았으면 김선달의 장난기에 바로 절경의 길목에 줄을 쳐놓고 입장료를 받아 챙겼을 것이다.
그러나 옛말에 '값없는 청풍(靑風)이요, 임자 없는 녹수(綠水)'라고 하지 않던가. 천하의 봉이 김선달이지만 금강산의 기기묘묘한 절경 앞에서는 감히 그런 장난의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입만 딱딱 벌리며 감탄에 감탄을 연발할 뿐이었다.
구룡연 앞쪽에 자리잡은 유점사의 법당에서 부처님 앞에선 순간 그동안의 장난에 대하여 사죄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몇 날을 걸려 금강산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이제 금강산의 절경을 모두 눈에 담고 해금강이 바라다 보이는 바위 위에 서니 또다시 호기로운 생각이 동하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내 일찍이 사나이 된 몸으로 바다의 너른 모습을 어이 보지 않고 돌아가겠는가.'하고는 동해안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리하여 당도한 곳이 동해바다와 입을 맞대고 있는 화진포였다.
바다를 끼고 있어 그 경치도 경치려니와 둘레가 자그마치 30리 이상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규모라 이게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이 되지를 않았다.

때는 겨울인지라 주위의 무성한 갈대가 쓰러져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 마치 넓디넓은 평야를 보는 것 같았다. 불과 며칠 전 금강산에서의 반성은 어느새 간 곳 없고 슬슬 장난끼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주막에서 화진포 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빈둥거리던 김선달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주모에게 장정 서너 사람과 근처에서 볏짚을 좀 구해달라고 했다.
주모는 '그건 무엇에 쓰시려구요?' 하고 의아해 물으면서 장정들을 모으고 볏짚을 구하여 마당 한쪽에 쌓아놓았다. 김선달은 장정들에게 볏짚을 썰어 소쿠리에 담아 화진포 호수 위에 듬성듬성 갖다 뿌리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볏짚은 호수 위에 얼어붙었고 그 모양이 마치 가을에 벼를 베고 난 후의 논바닥처럼 변했다.
이때 마침 한양의 돈 많고 욕심 많은 부자가 유람을 왔다가 이곳에 왔다.

김선달은 그 부자에게 사람을 붙여 아주 비옥한 평야지를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 헐값에 팔려고 하는데, 애석하지만 이 겨울만 지나고 봄에 남을 시켜 농사를 지어도 가을이면 충분히 이문이 남을 거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기다리지 않아 그 어리석은 부자가 찾아오자 김선달은 마지못해 흥정에 응하는 척하면서 호수를 논으로 속여 팔아버린 후 서울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또 한번 그의 장난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때는 춘삼월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오고 꾀꼬리 종달새 지저귀는 봄이었다.
지난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평양과 화진포에서 한탕 크게 장난을 친 김선달은 겨우내 방안에 틀어 박혀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한 게 때아닌 몸살까지 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봄이라고는 하나 그저 마루 끝에 앉아 흐트러진 상투나 다듬고 해바라기를 하며 봄도 되고 했는데 어디 가서 시원한 술 한잔에 분탕질이나 한번 하면 좋으련만.... 하고 실없는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그때 뒷집에 사는 허서방이 찾아와 '선달님 계시오?' 하면서 사립문을 여는 게 아닌가.
지척이 천리라고 오랜만에 보는 허서방이 반갑기도 하고, 정말로 간만에 탁배기라도 한잔하고 싶던 차에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뜻밖에도 허 서방은 "세상에 꽃이 천지인데 이렇게 집에만 틀어 박혀 있다니 선달님 답지 않으십니다."하며 흥인문 밖 용두리 나무시장 거리에 송치요리를 잘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송치는 폐결핵, 허약체질 개선, 만성피로 등에 효과가 있는데 송치란 어미뱃속의 송아지를 말하는 것이다. 송치와 돼지의 새끼보인 애저는 중탕하여 국물을 장복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웬만큼 밤샘을 해도 피로를 모르게 된다고 전해온다.
또 송치의 뱃속에 닭고기 다진 것, 두부, 마늘, 파, 호두, 인삼, 백출, 진피, 대추 등을 넣고 실로 꼭 묶어서 푹 찐 송치를 약 중탕으로 먹기도 하여 예나 지금이나 매우 귀한 요리로 친다.
원래 흥인문 밖의 나무시장은 경상도 북부지방과 강원도 그리고 경기 동부지역에서 올라온 땔감들이 전을 펼친 곳이며 그 지역사람들의 도성나들이 길목으로 항상 사람들이 들끓는 곳이다.
특히 이곳에는 태종 임금 때부터 선농단이 모셔지고 거기서 유래된 설렁탕으로도 유명한 동네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 음식점들도 많았지만 그 중 가장 귀한 음식이 송치요리 였다.
김선달이 탁배기 한잔을 곁들여 송치요리를 배부르게 먹고 나서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걸음걸이로 장거리를 나서서 어슬렁어슬렁 구경을 하며 가는데 물지게를 진 물장수들이 연신 성안으로 들락거리는 것이었다.
이미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전력이 있는지라 김선달의 눈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음- 성안에도 우물이 있는데 어찌 여기에서 물지게를 져 나를까?' 하는 생각에 허서방에게 물어보니 허서방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본디 마을의 산이 용의 머리 형상과 같이 생겼다 하여 마을이름이 용두리인데, 여기에 찬물내기라는 우물이 하나 있다.
그 우물에서 옛날에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용두리 찬물내기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우물의 물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이었다. 한겨울에는 따끈따끈하고 또 한여름에는 시원하기가 얼음물 못지 않은 것이 성안에까지 물맛이 소문이 나서 웬만한 대가 집에서는 모두 용두리 우물물을 사서 먹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용두리 물장수들의 수입이 짭짤하며 이 동네 알부자들이 많다는 말까지 곁들이며...
'옳거니 아직 내가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소문이 한양에까지 오지는 않았으니 잘만하면 또 한탕하게 되겠구나.' 하고 무릎을 치며 얼굴에 웃음을 하나가득 띄는 것이었다.
허서방은 영문도 모른 채 김선달이 또 무슨 일을 꾸미려는가 하는 짐작만을 한 채 뒤를 따랐다.
다음날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김선달은 나무막대기 몇 개와 새끼줄 열 댓 발을 허리춤에 차고 흥인문 밖 용두리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아직 물 지게꾼들이 도착하기에도 아직 이른 시각이었다. 김선달은 우물 둘레에 막대기를 박고 새끼줄로 금줄을 둘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