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동

행복을 여는 동대문구

답십리동

동대문(東大門)으로부터 10리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답십리동

답십리 동명의 유래는 조선초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도읍을 정하려고 이곳을 밟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이곳이 도성, 즉 동대문(東大門)으로부터 10리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하여 왕십리(往十里)와 같은 의미로 답십리(踏十里)라 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청계천 하류인 이곳은 들(논)이 넓어 답십리(畓十里)라 하였고 농본 국가인 조선시대 국왕(國王)이 일년에 한 차례씩 농민들의 고통을 체험코자 이곳에 이르러 논둑을 밟으며 모내기에 임했기 때문에 답십리(踏十里)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정작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예전 이 지역에는 답십리의 여러 마을 중 제일 먼저 생겨났다는「원마을-일명 원동(元洞)」과 원마을 너머에 있었다는「너머마을-일명 월동(越洞)」원마을 윗쪽이라 하여 붙여진「웃마을」「작은답십리」등 자연 부락이 있었으며, 답십리3동에는「도단(都壇)-일명 장영당」이라는 신당(神堂)이 있습니다.

현재 답십리 지역엔「자동차부품상가」「고미술상가」「황물상가」등 특화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답십리근린공원」「간데메공원」「동대문 문화회관」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