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제원에서 하룻밤 쉬어 갑시다

행복을 여는 동대문구

보제원에서 하룻밤 쉬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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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흥인문(동대문) 밖 3리 지점에 보제원이 있었다. 보제원이란 명칭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보호하는 구휼기관이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로가 발달되면서 원(院)과 역(驛)이 생겼다. 역은 서울인 한양 도성에서 전국의 각 지방에 이르는 30리 길마다 도로가에 설치하여 중앙과 지방간의 문서전달 관문, 공세(貢稅)의 수송, 또는 관료들의 공무여행 때 마필의 잠자리나 먹이 등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원은 주로 공용여행자의 숙소 및 식사를 제공하기 위하여 역 가까이 설치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서울 근처의 원은 동대문 밖의 보제원, 서대문 밖의 홍제원, 남대문 밖의 이태원, 그리고 광희문 밖의 전관원이 있었다.
세종대왕 때의 역사 기록인 세종실록에 의하면 [흥인문 밖에 보제원, 소의 문 밖에 홍제원을 설치하고 배고픈 이들의 진제장(賑濟場)으로 사용하고자 토자(土字) 형태로 2칸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진제장이라 함은 배고픈 이들의 허기를 진정시키는 곳, 즉 밥을 먹여 주는 곳이란 뜻으로서 보제원은 이 외에도 집을 떠나 여행하는 이들의 숙소를 이용되기도 했고 한의원과 한의사를 배치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진료를 해주기도 했다.
옛날부터 흥인문 밖 보제원 주위에는 경기도, 강원도 쪽에서 한약재를 캐서 가져와 파는 약재상인들이 많았다. 그곳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보제원에서는 바로 그 한약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보제원은 연고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죽으면 장례까지 치러 주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있은 후에 파발제도의 시행과 함께 참점(站店)이 설치되면서 원과 역이 흐지부지 되었는데 참(站)은 걸어서 하룻길이 되는 곳마다 설치되었다.
우리가 "한참 걸어가다 보면 보인다." 하는 '한참'이란 말은 바로 이 참에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오늘날 서울약령시로 지정된 경동한약상가가 보제원 인근에 번창하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