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롱탕인가, 설렁탕인가

행복을 여는 동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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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음력(陰曆)에 기초했던 옛날에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었다. 긴 겨울이 거의 끝날 무렵에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이 오면 이어서 겨우내 내렸던 눈 대신에 비가 온다는 뜻의 우수(雨水)가 지나고 보름 뒤에 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따라온다.
또한 음력을 썼던 옛날에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즉 12동물의 이름에서 따온 12간지를 쓰고 왕가나 민가에서 행사날을 잡을 때는 간지에 의해서 날을 잡는 것이 관례였다.

해마다 경칩 후 첫 돼지날(亥日)이 되면 흥인문 밖 선농단(현재 제기동 소재)에는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한해 농사가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는 제사, 즉 선농제를 드렸다. 논밭을 갈아엎기는 좀 이른 철이기는 하지만 한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국왕이 친히 선농단에 행차하여 풍년이 되기를 바라는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농업이 주업이었던 그 당시로서는 백성들에게는 큰 위안이었으며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격려이기도 했다.

이미 오래 전 삼국시대인 신라시대 때부터 선농, 중농, 후농 행사가 있었다고 전해 오나 역사에 기록된 것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성종임금 때이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더욱 빈번히 이 제사가 행해졌음이 조선왕조실록 면면에 기록돼 있다. 국왕이 선농제에 참석하기 위해 신하들을 대동하여 동대문을 빠져 나오면 백성들이 그 뒤를 따라 선농단으로 모여들었다. 선농제의 신위(神位)는 고대중국의 황제로서 처음 곡식을 심고 농사를 짓는 방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친 제신농씨(帝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이다.
그러하기에 선농제에서 읽는 축문(祝文) 내용을 보면
"제신농씨 신이시여 엎드려 바라오니
처음으로 농작물을 심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일으키시어
온 세상 백성들을 넉넉히 살게 하셨으니
이에 제사지냄을 마땅히 여기며 올해에도 풍년이 들게 하여 주시옵기를 기원하면서
삼가 희생과 폐백 제주와 제수를 갖추어
신전에 바치오니 우리의 정성을 받아주시옵소서."하거나, "후직씨 신이시여 엎드려 비오니
좋은 곡식을 심고 길러 많은 백성들을 널리 기르시고
부정타지 않게 막아 주시고 저희 중생들에게 복록을 누리도록 도와주소서." 하였다.
제사 때는 특별히 제례에 쓰이는 음악(제례악)이 연주되었으며 국왕은 곤룡포를 벗은 후에 제복으로 갈아입고 첫 잔의 술잔을 신위에 바쳤다. 이어서 영의정이나 왕세자가 차례로 잔을 올린 후 제물을 먹고 음복과, 폐백을 불에 태워 땅에 묻는 망요례를 끝으로 제례가 끝났다.

선농제가 끝나면 임금은 친히 소를 몰고 쟁기를 갖춰 논을 가는 시범을 보였다. 임금이 시종들의 보조를 받으며 5고랑의 논을 갈면 이어서 왕세자, 영의정 등이 7고랑을 갈고 판서와 대간들이 차례로 9고랑을 갈아 시범을 보인 후 전농시윤이 평민들과 더불어 논을 갈아엎는다. 이 때 임금은 관경대(觀耕臺)에 올라 신하들과 백성들이 논을 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논갈이 행사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은 후 제사에 참석한 제관들과 백성들에게 특별한 음식을 내렸는데 그 음식이 선농제에 희생으로 쓴 소를 잡아 국을 끓인 탕국에 밥을 말은 것인데 사람들이 이 음식을 선농탕(先農湯)이라 했다. 선농탕은 훗날 닿소리 이어바뀜으로 설롱탕이라 읽게 됐고 오늘에 와서 설렁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선농제는 조선왕조 역대국왕에 이어져 내려오다 조선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 2년에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과 수탈에 의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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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임금이 마지막 선농제를 올릴 때 순종은 그 전날 오후에 대궐을 나와 제기동에 있는 윤덕영의 사저(현재 그 건물은 남산 한옥마을에 옮겨졌다)에 나와 하룻밤을 묵었다고 한다. 본래 이 집은 윤덕영 대감의 형인 윤택영이 선농제를 지내기 위해 대궐에서 나오는 자신의 사위인 순종을 위하여 지은 집이기도 했다.

일본은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고자 선농제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으며 제기로 썼던 놋그릇마저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아 갔다. 뿐만 아니라 선농단 일대를 훼손하여 '청량대'라 이름한 공원으로 만들고 후에 이곳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사범대학 건물을 지었다.

그 후 해방이 되자 선농단 주위에 살던 주민들이 일본인들이 세운 '청량대' 비석을 쓰러뜨리고 해마다 십시일반으로 추렴을 하여 선농제를 지내왔으며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 주관으로, 1999년부터는 동대문구와 농림부, 동대문문화원 공동 주관으로 곡우일인 4월 20일에 선농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