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가 처음 다녔던 길, 청량리

행복을 여는 동대문구

전차가 처음 다녔던 길, 청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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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울시내 곳곳이 지하철로 연결되어 있고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약 100년 전만 해도 서울거리에는 사람이 끌거나 밀어서 움직이는 인력거가 가장 편리하고 빠른 교통수단이었다.

국왕이나 고관대작 들이 행차를 할 때는 주로 연이나 가마를 탔으며 자동차가 대궐에 들어온 것도 그 후의 일이다.
"국왕께서 명성황후의 능(홍릉)에 참배를 가실 때 능행길에 동원되는 사람이 많고 돈이 많이 드니 차라리 그 돈으로 전차를 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제일 먼저 고종임금에게 건의를 한 사람은 미국 상인 콜브란이었다.
"전차라니? 그것이 어떤 것인가?"
고종은 당시만 하더라도 전차란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인지를 잘 몰랐다.
"전차란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차를 말합니다. 이 사진을 좀 보시지요"

전차가 처음 다녔던 길, 청량리 이미지

콜브란은 미국에서 가지고 온 전차 사진을 고종에게 보여 주었다.
전기를 이용해서 차 바퀴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 당시 조선 조정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었고 선각자들 또한 문물이 크게 발달한 서양이나 일본에서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보았던 사실이었다.
고종임금은 백성들에게 국왕의 위엄을 과시하고 또 한편으로는 신식문물을 무지한 백성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백성들을 깨우치게 하고자 이를 허락하여 1898년 2월, 황실과 콜브란, 보스트위크가 공동 출자하기로 합의하여 최초로 전차개설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서대문에서 종로, 동대문을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약 8㎞의 거리에 전차궤도와 전선을 가설하는 공사였다.
새로 도로를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도로 위에 궤도를 깔고 전선을 세우는 공사였으므로 단기간에 공사가 완료되어 다음해인 1898년 12월 25일에 공사가 끝났다. 그러나 전차를 움직일 동력인 발전시설이 끝나지 않아 1899년 5월 17일(음력 4월초파일)에 가서야 정식으로 운행이 개시되는 개통식을 가졌다.

하지만 정작 전차가 개통되고 나서부터 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했다.
전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전차에 부착된 도르레가 전선에 매달려 동력을 전달 받아야 되는데 야밤을 이용하여 전선을 절단하여 훔쳐 가는 일이 자주 발생했던 것이다. 또한 전차는 빨라야 겨우 시속 20㎞ 정도인데 길에서 놀던 어린이가 그만 전차에 치여 사망하자 성난 군중들이 몰려가 전차를 밀어 쓰러뜨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차를 부설할 때만 해도 고종의 능 행차가 너무 번거롭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땡볕에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수고를 덜어주기 위하여 전차 개통을 진언했던 것인데 막상 전차가 개통되니 고종임금이나 순종이 그 전차를 타는 것을 매우 꺼려하여 겨우 2회만 전차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것은 초기에 도입된 미국 전차의 모습이 마치 상여를 닮은 모양이라 임금이 타기를 꺼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