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마당

엄마의 충혈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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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충혈된 눈
작성자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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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완연한 봄이다. 어른이 되고 보니 “벌써”란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벌써 1월이네. 벌써 2월이네.. 벌써 봄이네… 그렇게 벌써란 말은 내 입에서 떠날 줄 모르게 되었다. 1년이란 기간은 어이없을 정도로 짧고 10년도 눈깜짝할 사이에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어릴 적 기억들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이제는 우리 고향도 시골이라기보다는 아파트가 높게 올라가 있는 전형적인 도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밥을 지어 먹어야 했던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시골이다 보니 아버지뿐만 아니라 엄마도 늘 논밭에 나가 일하셔야만 했다. 보통은 새벽 5시 정도에 나가셔서 저녁 8시나 돼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농사일도 힘든데다 집안일까지 하시다 보니 엄마는 우리 형제들에게 늘 신경질을 부리셨다. 오늘날처럼 세탁기도 없었고 모든지 손으로 해야 했던 시절이니 집안일만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는 늘 짜증이 나 계셨고 우리에게 신경질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엄마였지만 내가 엄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엄마의 빨갛게 충혈된 눈이다. 물기가 가득한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지피다가 연기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그렇게 충혈되었던 것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밥 이외에는 간식이 거의 없었다. 반찬도 김치 하나가 전부였다. 한참 자랄 나이였던 우리는 늘 허기가 졌고 간식이 간절하게 그리웠다. 어릴 적 우리에게 간식이란 엄마가 밀가루와 소다만으로 만들어 주셨던 빵이 전부였다. 정말 밀가루 맛밖에는 아무 맛도 안 나는 그런 빵!!. 그 빵마저도 일주일에 한 번 먹기가 어려웠었다. 엄마는 늘 바빴으니까...
그날은 며칠 째 비가 와서 엄마가 논으로 일을 나가시지 못했고 마침 시간도 되니 우리에게 간식을 먹이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궁이에 물이 많이 차서 불을 지피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내가 무슨 일 때문인지 부엌에 가보니 엄마가 연기와 씨름하며 빵을 찌고 계셨다. 불도 제대로 지펴지지도 않고 연기만 하얗게 피어 오르는 아궁이와 씨름하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던 엄마의 충혈된 눈, 그 눈은 내 가슴에 못처럼 꽉 박혀서 두고두고 나의 눈을 메케하게 하곤 했다.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던 호랑이 같은 우리 엄마….. 70이 넘으셨음에도 젊었을 때의 그 성격이 가끔은 툭툭 튀어나와 이렇게 커버린 나에게나 우리 형제들에게 험한 소리도 하시곤 하지만 엄마의 가슴 깊은 곳에는 어렵게 어렵게 빵을 찌셨던 그날처럼 우리를 먹이고 가르치고 입히시고자 했던 강렬한 사랑이 아직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제 내가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엄마의 그 빨갛게 충혈되었던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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