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마당

내가 겪은 무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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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무서운 이야기
작성자 : 유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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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의 아버지와 대구의 어머니가 만나실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의 비극인 6.25때문이었다. 1.4후퇴때 친할머니와 남동생과 생이별을 하시고 당시 여학교에 다니던 여동생의 안전을 위해 아버지의 외삼촌과 함께 잠깐 피난을 나오셔서 한달 후에 다시 오겠다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55년동안 지키지 못하고 계신다. 아버지께서는 1960년에 이곳 동대문구로 이사하셨다. 거의 반백년을 여기서만 사시고 계신다. 종로의 성제국 한의원의 부원장으로 오랜 근무를 하시다가 나의 탄생과 더불어 동대문구 제기동 682번지에 개업을 하셨다. 정화여자중학교와 홍파초등학교의 통학로에 자리한 아버지의 한의원은 내나이와 같다. 정화여자중학교와 상업고등학교 앞에는 능수버들이 늘어져있는 개천이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늘 개천가로 산보를 나갔다. 봄에는 하얀 버드나무 꽃씨들로 눈이 오는 듯 했다. 홍파초등학교 정문 맞은 편까지 기차가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참으로 조용하고 깨끗한 당시에는 고급주택단지였다.
온통 기와의 한옥집들이 줄지어 있고, 집집마다 정원수를 심어 참으로 푸른 동네였다.
40년, 30년전의 동대문구의 한 동네가 왜 무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될까? 이 의문을 풀어보자. 갑자기 개천이 메워졌다. 그 많던 버드나무들도 모두 베어져 버렸다. 갑자기 넓은 시멘트의 길이 그야말로 청량리 까지 한없이 길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자전거대여점이 생겨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는 재미를 누렸다. 그러다가 하나 둘씩 생긴 음료수도매점들과 주류, 세제, 화장지등 공산품의 도매점들이 우후죽순 인도와 심지어 차도를 장악하여 창고화하고 쉴새없이 커다란 트럭들로 개천을 메운 도로는 소음과 매연에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복잡하다.  당신의 고향같은 개천이 젊고 배웠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위해 사라져 버린것을 아버지는 참으셨다. 같은 골목의 한옥집들이 모두 3층,4층, 5층으로 올라가 아버지의 한의원이 전혀 햇빛을 볼 수 없어도 아버지는 참으셨다. 주차장을 마련하지 않아도 신축할 수 있었던 시기에 너도나도 신축을 하는 통에 온통 건축의 소음과 분진에도 아버지는 참으셨다. 결국 주차로 아버지는 매일매일을 싸워야 하는 나날이었건만 지역민들과 당신 환자들과의 신의를 위해 자리를 옮기지 않고 참으셨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건강을 찾은 분들이 강남으로 옮기실 것을 그렇게도 종용하셨건만 아버지는 참으셨다. 허리디스크로 아버지는 잠시 쉬시고 나오셨지만 다시 한의원 문을 열 수 가 없게 되었다. 앞집 동현상가의 2.5톤 트럭(92 오 2050)이 몇 년째 하루온종일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정도 하고 소리도 쳐 보고, 동사무소와 구청에도 말 해보았지만 법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누구든 아버지의 한의원앞에는 차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자식들이 방문할 때조차도 차를 세울 수 없어 주차비를 내고 세운다. 왜 온종일 자신의 상가앞에는 절대 주차금지라고 써 놓고 아버지의 한의원앞에는 절대 차를 빼 주지 않는 걸까? 정말 무섭다. 이제 아버지도 자전거라도 집앞에 세우고 싶어 하신다. 아버지가 잠시 나와 계시는 오전 9시부터 3시까지라도차를 빼 주어 문도 열고 맘껏 청소도 하시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시고 하실 수는 없는 걸까? 동대문구에 꼬박꼬박 반백년 세금을 성실히 내고, 환우들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아버지가 살아 계신 동안 아버지의 한의원앞은 최소한6시간만이라도 차가 없었으면 한다. 그러나 온 집을 다 막고 그 트럭은 아직도 있다.
정말 무섭다. 너무 무서워 하나뿐인 아버지의 여식은 늘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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